기독교 형제단 5. (17세기 퀘이커 운동)
- 알림이
- 작성일202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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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퀘이커(Quakers) 운동
17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자유교회 운동 중 신비주의적 공동체가 있었는데 바로 퀘이커입니다. 그들 스스로 “친우회”(The Society of Friend)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는 퀘이커(Quakers)로 불리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주님 앞에 떠는 자(quaker)들로 알려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고 기성 교회들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긴 합니다.
1) 퀘이커의 발생
퀘이커는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폭스는 영국국교회 신자들의 경건하지 않은 삶에 실망했고, 비국교도 설교자들이 메시지와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역시 그들에게 실망했습니다. 폭스는 어떤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답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1646년에 이르러, 폭스는 “내면의 빛”(inner light)을 추구하면 그것은 분명히 생명과 영적인 진리로 이끌어 주리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목회는 하나님이 사용하고자 계획한 모든 이들의 사역이며, 직업적인 목회는 거부돼야 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모이는 건물을 “교회”라고 부를 수 없으며, 봉급을 받기 위해 일하는 목사들은 참 목자들이 아니라 “삯꾼”들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폭스는 대부분의 교회 예식과 직제는 성령의 자유를 방해하는 인간들의 발명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곧 폭스를 따르는 무리가 생겼는데, 그들은 제도적 종교(institutional religion)보다 십자가의 길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2) 퀘이커가 가진 자유교회 전통
미국으로 이주한 퀘이커를 이끈 지도자였던 윌리엄 펜(William Penn)은 자신의 저작인 「퀘이커라 불린 사람들의 그 원리와 실행에서 부활 된 원시 기독교」(Primitive Christianity Revived in the Principles and Practices of the People Called Quakers, 1669)를 통해서 퀘이커교도는 사도적 기독교에 대한 근원적 이해로 사도적 기독교의 교회론적 회복을 지향하였다고 밝혔습니다. 펜에 따르면, 신자는 정치적 강요에 반대함을 통해, 즉 종교의 자유 가운데서 진정한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실제로 퀘이커는 원시 기독교를 이루는 데 필요한 요소 중에 ‘정부에 의해 강제된 십일조’를 거부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할 때, 퀘이커는 국가교회로부터의 자유를 지향한 공동체였습니다.
퀘이커는 4세기 이후 지속되어 온 유아세례를 거부했으며, 국가의 후원을 받고 국가가 지지하는, 위계적이고, 고도로 전례(典禮)적이며, 교리적으로 정의된 교회 체계에 도전한 종교적 근원주의자들로 평가받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퀘이커는 자유교회 전통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퀘이커의 신비주의적 경향
퀘이커교도는 조직화 된 기독교의 제도적 함정들을 지적하고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명시적으로 공식화된 믿음, 즉 신앙을 형식화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예배에는 특정한 형식이나 순서가 없었으며, 침묵 속에서 누구든지 성령이 감동하셨다고 느끼면 자유롭게 말하거나 소리 내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공 예배에서 “회중 침묵”(gathered silence)을 통해 개인적으로 그 마음에 감동하시는 방법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침례가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의미로 들어가 그분과 더불어 생명의 새로워지는 상태로 나타남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형식으로서의 침례식이나 침례탕이 필요 없다고 여겼어요. 주의 만찬에 대해서도 참된 교제가 영혼의 영적인 떡, 즉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에 직접 참여하는 데 있다고 믿었기에 만찬 예식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참된 교회의 각 지체는 하나님께 제사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목회자도 필요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사를 받게 되면 사역자가 될 수 있으며 교회가 하는 유일한 일은 이 은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개념 안에서 퀘이커는 누구나 회중에게 주는 메시지를 선포할 자유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퀘이커 모임에서는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신자가 실제로 제사장이 되어야 하고 교회의 일반적 종교활동이 회중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시는 성령의 지도하고 통제하시는 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자유교회라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할지라도 각 그룹이 지향하는 바나 그들의 신학이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향을 직접 주고받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들은 초대 교회를 추구하면서 그들이 살던 시대의 제도화된 교회와 형식화된 신앙을 벗어나 순수한 교회를 지향하다 보니 자유교회라는 공통점을 나타내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by. 방기만 (서청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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