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형제단 소개 2. (국가교회 vs 자유교회)
- 알림이
- 작성일202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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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교회 vs 자유교회
자유교회라는 용어는 일반 성도들, 심지어 목회자들에게까지 생소한 단어입니다. 국가교회는 국가와 교회가 하나가 된 형태라면, 자유교회는 국가로부터 분리된, 즉 자유로운 교회를 말합니다.
1) 국가교회의 시작
국가교회는 그 시작을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주후 313년에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 황제가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종식하고 신앙의 자유를 천명했습니다. 오늘날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칙령을 발표했기에 밀라노 칙령이라고 합니다. 밀라노 칙령 이전에는 기독교는 로마제국에서 불법 종교였기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제 그 박해가 종식된 측면에선 좋은 일이었죠. 그런데 그 후 380년에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유일한 합법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로마제국에서 잘 살려면 기독교인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형식적으로라도 교회에 나가야 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며 그들이 교회의 일원이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믿음이 없어도 로마제국의 시민으로 살아야 하니까 믿는 척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시민은 곧 기독교인’이라는 등식이 성립한 것인데, 이것이 국가교회(state church)입니다. 국가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교회의 본질에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훗날 키에르 케고르가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 곳에서는 진정한 기독교인은 찾을 수 없다”라고 말했듯이 신앙이 강제될 때, 참 신앙을 갖기 어렵게 됩니다. 오늘날은 종교의 자유가 보편화되어 있기에, 이 부분은 우리가 잘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가 보편화된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 미국이 독립하면서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명시한 사건이 큰 전환점 중 하나였습니다.
2) 자유교회 운동의 발생
사실 국가교회 이전의 교회, 즉 초대교회는 세속 정부와 관련이 없는 자유로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국가교회 체제가 유럽에서 뿌리내린 후 세월이 지나 국가교회 이전 교회의 본질을 추구한 교회, 즉 국가교회 체제로부터 자유로운 교회를 추구한 운동을 자유교회 운동(free church movement)이라 하며, 그렇게 정착된 신학적·실행적 전통을 자유교회 전통(free church tradition)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인이 아닐지라도, 종교개혁을 들어봤을 것이고,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불을 당겼다고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을 ‘관료 의존적 종교개혁’(Magisterial Reformation), ‘근원적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 ‘반동 종교개혁’(Counter Reformation)이라는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관료 의존적 종교개혁은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루터, 츠빙글리, 칼빈과 같은 종교 개혁자들이 주도한 개혁입니다. 이 종교개혁을 관료 의존적이라고 명하는 이유는 그들이 제후들이나 시의회와 같은 세속 정치세력과 협력, 또는 그 힘에 의지하여 종교개혁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근원적 종교개혁은 종교개혁의 주요한 가치인 사람이 행하는 의로운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성경적 복음에 동의하면서도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초대교회로 온전히 회복하고자 한 개혁이었습니다. 이 개혁을 주장한 사람들이 추구한 교회는 교회의 근원, 즉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기 이전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반동 종교개혁은 로마가톨릭교회가 종교 개혁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도덕적인 개혁을 하면서 교리적으로는 로마가톨릭의 교리를 더 강화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3) 관료 의존적 종교 개혁자들과 근원적 종교 개혁자들의 차이
관료 의존적 종교 개혁자들은 당시 상식화된 유아세례(Infant Baptism)를 인정했다면, 근원적 종교 개혁자들은 유아세례가 성경에서 말하는 세례(침례; baptism)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근원적 종교 개혁자들은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세례는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신앙고백 차원으로 받는 것이었습니다. 근원적 종교 개혁자들은 유아세례가 국가교회 체제를 떠받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도 어릴 때 받은 유아세례가 성경적 세례가 아니기에 다시 세례를 서로에게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재 세례(침례)파라고 부릅니다. 라틴어로는 아나뱁티스트(anabaptists)라고 합니다.
4) 세례(침례) 중요성
유아세례는 16세기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이미 천년을 내려온 전통이자 관행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교회에 데려가서 세례를 베푼 것이었어요. 원래 교회에서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았는데,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된 후인 4세기경에 이런 전통이 생겼어요.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때에 명목상이지만 모든 로마인이 기독교인이 된 상황에서 유아기에 사망한 자녀들이 사후에 천국에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이 유아세례였습니다. 그 이후 지속된 유아세례는 종교개혁이 일어날 당시까지 약 천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한글 성경에 세례로 번역된 단어는 신약성경의 언어인 그리스어(헬라어)로는 ‘밥티즘’(baptism)이라고 합니다. 이 예식은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신앙고백으로 행한 것이었습니다. 초기의 ‘밥티즘’은 온몸을 물속에 잠그는 것이었는데, 로마서 6장에서 표현된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고 부활과의 연합의 원리를 잘 드러내 줍니다. 물론 교계에서 약식 세례, 즉 관수례나 살수례 방식을 행하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밥티즘’을 받을 수 있는가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신앙고백으로 밥티즘을 행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세례 곧 침례는 교회 멤버(일원)가 되는 의식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는가와 관계가 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들을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한다면,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교회의 본질에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따라서 분명하게 복음을 인지하고 예수님을 믿기로 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며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유아세례는 아직 복음을 이해하거나 믿기로 결정할 수 없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서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기에 문제가 됩니다. 그렇게 교회 일원이 되었지만, 하나님과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은 바가 없기에 믿음 안에서의 가치기준을 갖지 못하기에 믿는 자다운 삶을 살 수도 없게 됩니다.
성경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교회가 출현했음을 보여주고,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성령 침례 받은 사람들을 교회에 더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따라서 교회는 믿어 성령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 즉 성령 공동체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을 교회 일원으로 인정하면, 성령 공동체라는 교회의 본질에 문제가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성령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은 성령의 영향력, 즉 인격적 변화와 세계관의 변화가 생기지 않기에 세속적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고 있기에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손 가락질 받을 수 있습니다.
1) 국가교회의 시작
국가교회는 그 시작을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주후 313년에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 황제가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종식하고 신앙의 자유를 천명했습니다. 오늘날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칙령을 발표했기에 밀라노 칙령이라고 합니다. 밀라노 칙령 이전에는 기독교는 로마제국에서 불법 종교였기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제 그 박해가 종식된 측면에선 좋은 일이었죠. 그런데 그 후 380년에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유일한 합법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로마제국에서 잘 살려면 기독교인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형식적으로라도 교회에 나가야 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며 그들이 교회의 일원이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믿음이 없어도 로마제국의 시민으로 살아야 하니까 믿는 척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시민은 곧 기독교인’이라는 등식이 성립한 것인데, 이것이 국가교회(state church)입니다. 국가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교회의 본질에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훗날 키에르 케고르가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 곳에서는 진정한 기독교인은 찾을 수 없다”라고 말했듯이 신앙이 강제될 때, 참 신앙을 갖기 어렵게 됩니다. 오늘날은 종교의 자유가 보편화되어 있기에, 이 부분은 우리가 잘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가 보편화된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닙니다. 미국이 독립하면서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명시한 사건이 큰 전환점 중 하나였습니다.
2) 자유교회 운동의 발생
사실 국가교회 이전의 교회, 즉 초대교회는 세속 정부와 관련이 없는 자유로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국가교회 체제가 유럽에서 뿌리내린 후 세월이 지나 국가교회 이전 교회의 본질을 추구한 교회, 즉 국가교회 체제로부터 자유로운 교회를 추구한 운동을 자유교회 운동(free church movement)이라 하며, 그렇게 정착된 신학적·실행적 전통을 자유교회 전통(free church tradition)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인이 아닐지라도, 종교개혁을 들어봤을 것이고,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불을 당겼다고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을 ‘관료 의존적 종교개혁’(Magisterial Reformation), ‘근원적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 ‘반동 종교개혁’(Counter Reformation)이라는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관료 의존적 종교개혁은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루터, 츠빙글리, 칼빈과 같은 종교 개혁자들이 주도한 개혁입니다. 이 종교개혁을 관료 의존적이라고 명하는 이유는 그들이 제후들이나 시의회와 같은 세속 정치세력과 협력, 또는 그 힘에 의지하여 종교개혁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근원적 종교개혁은 종교개혁의 주요한 가치인 사람이 행하는 의로운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성경적 복음에 동의하면서도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초대교회로 온전히 회복하고자 한 개혁이었습니다. 이 개혁을 주장한 사람들이 추구한 교회는 교회의 근원, 즉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기 이전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반동 종교개혁은 로마가톨릭교회가 종교 개혁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도덕적인 개혁을 하면서 교리적으로는 로마가톨릭의 교리를 더 강화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3) 관료 의존적 종교 개혁자들과 근원적 종교 개혁자들의 차이
관료 의존적 종교 개혁자들은 당시 상식화된 유아세례(Infant Baptism)를 인정했다면, 근원적 종교 개혁자들은 유아세례가 성경에서 말하는 세례(침례; baptism)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근원적 종교 개혁자들은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세례는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신앙고백 차원으로 받는 것이었습니다. 근원적 종교 개혁자들은 유아세례가 국가교회 체제를 떠받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도 어릴 때 받은 유아세례가 성경적 세례가 아니기에 다시 세례를 서로에게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재 세례(침례)파라고 부릅니다. 라틴어로는 아나뱁티스트(anabaptists)라고 합니다.
4) 세례(침례) 중요성
유아세례는 16세기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이미 천년을 내려온 전통이자 관행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교회에 데려가서 세례를 베푼 것이었어요. 원래 교회에서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았는데,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된 후인 4세기경에 이런 전통이 생겼어요.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때에 명목상이지만 모든 로마인이 기독교인이 된 상황에서 유아기에 사망한 자녀들이 사후에 천국에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이 유아세례였습니다. 그 이후 지속된 유아세례는 종교개혁이 일어날 당시까지 약 천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한글 성경에 세례로 번역된 단어는 신약성경의 언어인 그리스어(헬라어)로는 ‘밥티즘’(baptism)이라고 합니다. 이 예식은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신앙고백으로 행한 것이었습니다. 초기의 ‘밥티즘’은 온몸을 물속에 잠그는 것이었는데, 로마서 6장에서 표현된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고 부활과의 연합의 원리를 잘 드러내 줍니다. 물론 교계에서 약식 세례, 즉 관수례나 살수례 방식을 행하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밥티즘’을 받을 수 있는가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신앙고백으로 밥티즘을 행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세례 곧 침례는 교회 멤버(일원)가 되는 의식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는가와 관계가 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들을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한다면,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교회의 본질에 문제가 생깁니다.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따라서 분명하게 복음을 인지하고 예수님을 믿기로 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며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유아세례는 아직 복음을 이해하거나 믿기로 결정할 수 없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서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하기에 문제가 됩니다. 그렇게 교회 일원이 되었지만, 하나님과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은 바가 없기에 믿음 안에서의 가치기준을 갖지 못하기에 믿는 자다운 삶을 살 수도 없게 됩니다.
성경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교회가 출현했음을 보여주고,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성령 침례 받은 사람들을 교회에 더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따라서 교회는 믿어 성령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 즉 성령 공동체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을 교회 일원으로 인정하면, 성령 공동체라는 교회의 본질에 문제가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성령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은 성령의 영향력, 즉 인격적 변화와 세계관의 변화가 생기지 않기에 세속적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고 있기에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손 가락질 받을 수 있습니다.
by. 방기만 (서청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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